큰 믿음 교회에 대해서 잠시 나누고싶어서 이 새벽에 깨어 글을 올립니다.

새벽기도도 가야하니 글 올리고 더 자기도 그렇겠네요.

이곳 안에도 큰믿음교회 관계자나 교인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번 이 글을 프린트해서 교제시간에 "우리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하고

나눠보시면 어떨지 제안을 드립니다.

 

맨 아래에 올린 내용을 큰믿음교회와 관련된 지식인에 올렸었는데요,

큰믿음교회 신자로 보이는 분이(관련 글에 너무 정죄하고 다니는 열심을봐선 임원인가 싶은 생각마저...)

댓글로 저를 정죄하고 예수님께 용서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 댓글을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보니까 삭제했네요. 제가 문제를 삼아 그 정의와 믿음에

자신이 있으면 전화통화라도 해보자했더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못박은 사람들조차도 정죄하지 않으려 애쓰셨는데,

그 사람은 이 글을 올린 저를 보고서 "하나님 이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라는 표현을 하더군요 -_-;;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글 내용에 정죄 받을만한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욕설도, 협박도, 증오도, 판단도 없이 그냥 궁금증에 대한 해명을 기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포함된 기사들의 내용도 그렇구요.

 

설령 이견이 있어서 조율적인 대화를 한다면(저는 그냥 다미선교회 시절의 손에스더님에 대한

해명 자료가 있는지, 없다면 해주시는 것이 옳지 않은지에 대해 몇 줄 의견을 피력하고 관련 기사를 링크했던 것 뿐입니다.)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는 자세가 옳은 것이지, 어떤 대화의 시도도 임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과 다르다고

상대를 "정죄"해버리면 그게 옳은 크리스챤의 모습일까요?

 

큰믿음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적이지도 않고 크리스챤의 바른 모습이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저는 다미선교회가 흥하던 시절, 그것에 다치는 주변의 크리스챤 친구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때문에,

손에스더씨는 반드시 책임감을 가진 사과와 해명자료를 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다미선교회에 다친 교회 사람들보면 그래도 그 당시에

교회생활 나름 뜨겁게 한다는 분들이 많이 그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을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던 그 시절의 여러 교인들을 보면서도,

그래도 속으로는 "당신들 같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부류보다 낫다. 차라리 그들이 위로 받으리라"

생각했을 정도의 사람입니다.

차라리 어중이 떠중이들이 넘어갔다면 그려러니했을텐데,

정말 나름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꽤 많이 그곳에 빠지게 되던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는 믿음은 역시 언제나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살하는 사람, 인생 거의 폐인된 사람, 신앙을 버린 사람...

참 여러 모습의 결과도 부분적으로 보았습니다. 대부분 다시 돌아와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지만요.

 

그래서 그 때 관련된 주측 인사들은 정말 크게 회개하고 반성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장림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많은 부분 부정하고 있고,

당시 예언한다던 관련자들도 아무런 공개적인 해명없이 사라졌습니다.

다들 어느 교회 안으로든 들어갔다면 더이상 이상한 예언은 멈추고 바르게 신앙생활하기를 바랄뿐입니다.

(덕을 세우기위한 은사 예언이,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폐하는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일뿐입니다.)

그 중 손에스더님은 정말 많은 사람들을 그곳에 빠지게했던 수많은 예언을 하던 분이었고,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예수님을 만났으며 천국 강가에 92년 휴거 플랭카드가 걸려있다고 했던,

당시 다미선교회와 관련된 예언자 중 한 분 이셨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큰믿음교회가 이단이라거나 크게 잘못되었다는 확실한 판단은 아직 하지 않습니다.

이장림이라해도 하나님이 용서했다면 우리가 더이상 정죄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내가 모르지만 이미 회개하고 바른 신앙의 삶은 살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궁금해서 올려봤던 글이었습니다.

그런 교회의 예언자학교 교감이면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피력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누군가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름 신중하려고 노력하고 정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직접 제가 보거나 들은 것으로서

그들을 판단할만큼, 영분별할 만큼의 경험과 지식이 아직 없기도 합니다.

 

다만 그 교회 카페 댓글만으로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기준해본다면, 참 답답한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얼마든지 넓은 마음과 섬기는 자들로서의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궁금증에 대한 것에까지조차, 저리도 딱딱하게 반응하고 항상 정죄하려 하는 것일까요?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을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성경이 우선이 아닌 예언이 우선이 되는 논리에 대해서

단지 "예언하기를 더 사모하라"는 식의 한 줄 성경내용을 부각시켜 모든 신앙적 논리에 

합리화하려는 모습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앞.뒤 다 잘라 버리고 그 한 구절에 모든 진리를 두려는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을 논하던 고린도서의 말씀들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위한 도구적 은사로서 

선포되어지는 말씀들이었고, 그 말씀의 최종 문맥은 사랑으로 끝납니다. 찾아서 읽어보십시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구절 하나로 모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말씀이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할 시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무의미하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상기해야할 시대입니다. 

방언과 예언을 논한 후에 이 보다 더 크고 비밀한 것의 진리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던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사랑"이었습니다.

문맥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것을 받아들여야하는데 "예언"하나에 포인트를 맞추어서

더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마귀도 병자를 고치고 사단도 하나님의 기적을 흉내냅니다.

얼마든지 옳지 않은 영들도 예언도, 방언도, 기사와 이적도 흉내를내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열매는 확실하기때문입니다.

다미선교회 시절에 병자가 고침을 당한 간증이라거나 입신과 환상, 예언에 대한 간증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 그 시절에 그런 간증과 현상에 대해서 그 안에서는 누구도 헛점을 찾지 못하였고 다미선교회에 빠진 분들은

그 환상과 간증들을 거의 성경과 동급으로 여겨가며 신뢰를 보내었고 믿었습니다.

눈 앞에서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고 보았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겠죠.

그 일들도 이장림과 동역자 주측으로 꾸며서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실제로 그런 역사를 간간히 던져주고 미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미선교회도 휴거와 예언, 환상,이사와 기적에 대한 강조를 하면서

성경을 가능한 재해석하려고했고 성경을 예언보다 가까이두지 않았었습니다.

항상 누가 받은 예언을 강조했고 누가 천국을 가서 들었다느니, 예수님을 만나서 들었다느니,

어느 사람들이 예언을 받아서 말했다느니, 입신하여 환상을 보며 들었다느니, 성령이 찾아와서 말했다느니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아닌 확증도 할 수 없는 기이한 얘기들을 쏟아내기만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성경교가 맞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이 곧 그의 아들이십니다.

세상을 향하여 예비하고 계획하여 쓰게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이 성경에 대한 확신이 그렇게도 없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루어지게 하심에 대한 무지함으로 교만이 바르지 않은 생각을 불러온 것입니다.

이전의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큰믿음교회 사람들이 성경보다 좋아하는 그 예언이란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이 성경에 대해 많은 확증을 주셨습니다.

과거 신뢰할 수 있는 얼마나 많은 간증이 있습니까? 성경은 수백번, 수천번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으로 자라야합니다.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한다하였습니다.

자기 의나 열심만으로는 영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사도들도 고백한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 살아 움직이고 골수와...."

이 성경구절을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장림처럼 성경구절을 자기 의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그럴 듯하게 예언받았다면서 다른 의미를 적용시켜 변질해가는 논리는

앞으로도 이단들에게 계속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말씀 위에 믿음이 세워져 있지

못하기때문입니다.

 

 

100%라고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그런 은사보다야, 어떻게 이루어지고 언제 이루어질지 스스로들조차도

불확신한 그런 은사보다야, 확실하게 지도하고 가르침을 주며 믿음에 이르게하는 성경이 어찌 쳐질 수 있겠습니까?

그들 스스로도 100%가 아니라고 말하며 확증도 못하는 예언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당장 형제를 안아주도록 가르치고 있는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의 예언이고 사도들의 예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완전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신사도들이라는 큰믿음교회 초청집회자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말한 것 중에서 실증으로서 이루어진 예언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 그들 자신 스스로도 자신들의 하는 예언이 100%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인터뷰한 기사내용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에서 그들을 초청해 놓고 100%라고 말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연약한 질그릇에 담겨졌기에 하나님의 말씀 또한 완전함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니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잘못된 영으로 예언했기에 이루어짐이 없는 것이었겠죠.

실제로 예언이란 것만큼 사단의 술책으로 활용되기 좋은 것이 없습니다.

과거 거짓 선지자들이 다 예언을 하여고 많은 백성들이 미혹되어 예수님이 말하던 "다른 가르침"을 받아 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덕을 세우기위해 받은 은사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 차라리 예언이 폐하여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모든 것 중 최고의 진리로서 가르침을 주었던 사랑은, 바울의 고백처럼 방언이나 예언보다 더 확실한 진리였음이

고린도서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내용도 기독교는 성경교가 아니니 폐한다 하시겠습니까?

형제에게, 서로에게 안아줌으로서 덕울 세웁시다.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말구요.

자신들은 판단받기 싫어하면서 항상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이중논리는 어떻게 해석해야하겠습니까.

 

지금은 사랑을 더 외쳐져야할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온전히 이루기위해 예언해야합니다.

배고픈 자에게 배고프지 말라고 예언하면 이루어지겠습니까?"

모호한 내용으로 "하나님이 당신더러 배고프지 말라고 하십니다."하는 것이 배고픈 형제를 한번더 돌아보고 안아주는 것보다

귀중한 은사입니까? 완전한 덕을 세우는 것은 방언도 예언도 아닌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유대인같이, 혹은 헬라인같이 되어가며 열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얻고자, 주님께 인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까. 예언으로서입니까 사랑으로서입니까?

최고의 사도였던 바울도 그러했는데 자기 의로 스스로 확증하여

빨갱이나 좌빨논리를 말해가며 상처를 주는 일을 목회자가 한다면 그것이 바른 사랑의 가르침입니까?

 

가장 많은 예언을 하고, 천국을 다녀와서 말하며, 기사와 이적을 보였던 바울이야말로,

크고 놀라운 가장 큰 진리는 사랑이라고 확증하여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정말 화나는 일 앞에서도 "내가 어느정도라함은...."과 같은 표현을 해가면서

상처주지 않기위해 늘 노력했습니다.

화내고 소리치고 흔들듯이 말한다고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방언 받는 것이 좋다며 권면하였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위해서는 이보다 예언하기를 더 사모하라하였으나,

곧 더 크고 놀라운 비밀한 것을 알게해주겠다고 하시면서 "사랑"을 최고의 열매로 선포하셨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고 온갖 신령한 것을 다 나타내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방언도 예언도 다 폐할 것이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고아와 과부, 즉 시대의 소외층을 돌보고, 복음전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은사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가장 큰 무기는 방언도 예언도 아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이루기위해 은사적 도구로서 예언도 방언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씨앗으로 뿌려지는 그 순간에도 예언과 방언이 아닌 사랑이 일합니다.

 

 

현재까지 느껴지는 영으로서는 하나님이 온전히 기뻐하시는 그리스도 교회라는 생각이 많이 안 드는게 사실입니다.

이단이나, 속이는 영으로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한 것인지까진 판단할 수 없지만,

그들이 자신도 못느끼는 상태로 옳지 못한 영에 휘둘림을 당하는 중인지,

아니면 그냥 부분적인 모습에서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고민하고 성경적으로 사고해보아도 너무나도 다미선교회 시절의 예언들과 비슷하고,

카페에 있는 큰믿음교회 사람들의 댓글 성향도 그때의 분위기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심지어 거침없이 정죄하는 그 모습들에서는 그때보다 더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확신에 찬 정죄와 판단을 더욱 하시면서, 

성경말씀 자체로서의 정화력보다 예언이나 해외의 검증 안 된 사람들의 말에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이상한 신앙의 모습을 유지한다면,

예언은사의 원래 목적대로 덕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라할 수 있나요?

 

정말 이 시대야말로 겸손하게 섬기며 자기 주장조차 포기하고 손수 일하며 고생하여 온 땅에 복음을 전하던

사도바울이 생각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배부르고 숫자로서 번식해가는 그런 예언이 교회의 기쁨이 되어간다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바울을 논하면서 바울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변승수 목사님에 대한 것은 논할 것이 거의 없지만,(그만큼 알지도 못하기때문에 자제합니다.)

한가지는 분명 은혜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좌빨논리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을 전해야할 주의 종이,

보통의 선한 시민들도 손가락질하는 좌빨논리를 강대상에서 화내듯이 전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그랬습니까? 어느 사도가 그랬습니까?

바울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위해 여러 모습의 사람들처럼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헬라인에게는 헬라인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보통의 사람들도 손가락질하는 빨갱이논리로 자신들의 교인

수백명이 시험에 들어 떠나갔다면, 그것이 과연 사도들이 전했던 사랑의 모습과 같은 사역이라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런 모습때문에 개독교, 먹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 입니다.

너희로 인해 하니님의 이름까지 욕을 먹는다는 성경말씀이 사랑을 바르게 전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들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정치적인 논리는 언제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끝나야합니다.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마시고 하나님의 나라만 선포하세요. 예수님처럼, 사도들처럼 말입니다.

더 험악했던 그 시대를 살던 사도들도 그 어떤 정치적 개념에도 관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라의 관리들에게 순종하라했습니다.

저는 변승수 목사님이 정말 하나님의 종이라면 성경 안에서 바르게 세워져서

많은 영혼을 주께 돌아오도록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원래 믿는 사람들 다시 모아서 이상한 공동체집단을 만들어가는 이단종교들처럼 하는게 아니라,

믿지 않는 영혼들과 위로받지 못하는 영혼들을 불러서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시리라 기대합니다.

꼭 그런 분이시길 바라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아볼라파,바울파를 논하는 어리석음을 보일 때,

바울은 누구이고 아볼로는 누구냐라며 꾸중을 했지 않습니까?

큰믿음교회는 예수님으로 시작하는 듯 하다가 결국 사람의 이름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변승수 목사님은 뭐고 변애경 전도사님은 뭐고 그 수많은 이름도 모르겠는 검증도 안 된 해외 집회인도자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이 가리워지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높여짐과 위대해짐만 머리에 남겨집니다.

카페 댓글이 온통 사람이름에 대한 높임과 예언에 집중된 모습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질서있게하라고 했습니다. 예언 또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적 도구로서의

역활을 강조한 것인데 거기서는 완전히 또 하나의 성경이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완전한 예언이라면 왜 100%라고 말을 못하는 것인지요

그러면서 100처럼 믿는 그 믿음은 무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혼란스럽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예언이나 각종 신유은사를 받은 사람을

어떤 높은 위치의 사람처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은사란 행위와 상관없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의 은사적 모습을 보면,

무슨 감투같고 신비하게 높여진 사람들 같이 바라봅니다.

 

불교 집안에 들어와서 30년을 온 친적집까지 다 전도한 저희 어머님은

방언조차도 주지 않아서 20년쯤 간구한 후에야 겨우 받으셨습니다.

아마 그나마도 하나님을 믿는데 상관없다고 여겼다면 못받고 천국 가셨겠지죠.

사도 바울도 "모두가 방언을 하겠느냐..."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받기를 원했음에도 모두가 전도되었고 신앙생활을 한 20년이나 후에 겨우 주셨습니다.

정말 수많은 영혼을 찾아 전도하시었고 집안에서 주의 이름으로 핍박받았던 수고와 열매로서만 생각해보아도,

방언정도는 주셨어도 벌써 주셨어야했고, 방언뿐 아니라 온갖 은사를 받았어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란 그런 행위적 열매가 아니죠. 또 은사가 복음을 전하는 필수요소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을 최고의 가치를 가진 그리스도인의 열매로 바울이 최종적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어떤 행위적 열심으로서 받기를 바라는 논리가 그 교회 안에서는 너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은사란 개인의 신앙적 위대함(?)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거저 주심바된 것이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행위에 관계없이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집회 다니면서 존경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수천만원씩 받아서 배를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면,

결단코 그날에 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집안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세째 작은 어머니 경우에는

저희 어머니가 전도하던 그 주에 방언,통역,예언은사를 다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환상도 보고 성령이 직접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집안에 대해 예언도 전하시고 하실 정도로

은사를 넘치게 받았었습니다.

성경 읽기 시작한지 일주일만이었고, 새벽기도도 어머니가 끌고 다녀서 나가는 그런 초기 믿음 가운데

그런 것을 다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원숙해져서 존경할만한 그런 모습을 후에라도 보여주었느냐?

사실 그렇게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참 많은 은사를 받은 작은어머니였습니다.

은사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이고 행위에 대한 보답이나 신앙의 완숙도에

관한 열매도 아닙니다. 그런 것이라면 아마 고린도교회는 어떤 문제도 없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저는 큰믿음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모든것에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판단은 보류 중입니다.

단지 지금까지 든 생각이 이렇다고 나누는 것이며, 후에 영에 대한 분별이 스스로 명확해지면

더 안타까워할 생각일 뿐입니다. 다만 그 모습에서 사랑의 은혜는 정말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잘못된 영분별을 하는 것이라면 주님께 꾸중을 듣고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바른 영으로라면 큰믿음교회도 좀 변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천사의 모습을 한 바르지 못한 영에 자신들도 모르게 휘둘리는 중이라면 하나님께 긍휼 얻기를 간구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리스토인들끼리 정죄하는 세상이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고린도 교회보다도 못한 오늘날의 교회들인지...

지식이 교만을 부르고 지식이 수많은 교파를 나누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폐하고 그 모든 것이 폐하여도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서로 정죄하지 말고 겸손한 영으로서 분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