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가 교인들을 미혹하는 방법은 가장 먼저 일대일의 큐티 혹은 성경공부를 제안하는 것이다.

친구나 친지, 혹은 같은 교회의 교인 등 지인이 찾아와서 성경공부를 하자고 제안하거나 혹은 서점이나 기도원 등 우연을 가장하여 접촉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 일대일의 과정을 거쳐 상대방을 탐색한 후에 성경센터로 불리는 신학원으로 넘기게 된다. “목사(혹은 선교사, 전도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유혹한다.

신천지의 성경공부 중에서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비유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물론 비유도 있고, 실제도 있으며, 그 분별의 기준은 이성적인 상식이 될 것이다. 이미 앞의 (1)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특정한 단어를 상식적,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짜맞추는 비유풀이 공식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 이러한 비유풀이를 하기 위하여 그들은 ‘성경은 모두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고 가르치는 예비단계가 필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요한복음 10장은 성도를 양이라고 비유하고 그 목자는 예수님으로 비유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성경본문으로 양의 다리는 무엇을 비유하고, 양의 눈은 무엇을 비유하며, 양의 털은 무엇을 비유한다고 주장하였을 때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천지에서는 ‘씨’는 말씀이고, ‘밭’은 사람의 마음 혹은 교회라고 한다.

만약 “나는 오늘 밭에서 씨를 뿌렸다”라는 구절이 있다면 신천지의 비유풀이 공식에 의하면 “나는 오늘 교회에서 말씀을 뿌렸다”는 내용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공부를 배운 사람들은 이러한 해석을 감추어진 영적 비밀을 푸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실제적으로 신천지의 비유풀이는

<씨 = 말씀>, <밭 = 사람의 마음 혹은 교회>, <나무 = 사람>, <가지 = 제자>, <잎 = 전도자>, <열매 = 말씀과 성도>, <새 = 영>, <양식 = 말씀>, <누룩 = 교훈>, <그릇 = 사람의 마음>으로 비유풀이를 가르친다.

또 <하늘 = 장막 혹은 목자>, <땅 = 육체 혹은 성도>, <해 = 목자>, <달 = 전도자>, <별 = 성도>라고 가르치며,

<바다 = 세상>, <어부 = 전도자>, <그물 = 말씀>, <고기 = 성도>, <배 = 교회>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풀이를 기억시키기 위하여 노래로 만들어 암송하게 하거나 시험을 보기도 한다.

신천지에서는 처음에 일대일로 만나서 성경관을 가르치게 된다. 그 장소는 학교 강의실이 될 수도 있고, 커피숍이 될 수도 있으며, 혹은 어느 특정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한명의 성도를 성경공부로 포섭하기 위하여 여러 명의 바람잡이 조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경센터로 불리는 신학원으로 넘기게 되는데 처음 2개월 동안은 비유풀이를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 대표적인 비유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다시 말하면 아래와 같이 배우면 그곳은 신천지라고 보면 된다.


1.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

마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 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 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대한 비유가 일곱 개가 나온다. 신천지에서 비유풀이를 할 때에 가장 먼저 가르치는 내용이 마태복음 13장이다. 소위 단어풀이를 가르치기 위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마 13장의 첫 비유인 본문은 4가지의 밭을 말하고 있다. (1) 길 가 (2) 흙이 얇은 돌밭 (3) 가시떨기 위 (4) 좋은 땅의 4가지인데 이 4가지 밭은 씨가 뿌려진 4가지 밭의 형태를 말하는데, 복음을 받아들이는 4가지 종류의 사람의 마음 상태를 뜻한다. 마 13장18-23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비유를 풀어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문이 예수님의 말씀이므로 예수님의 해석이 가장 정답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만 한다. 예수님의 직접 해석하신 풀이를 들어보자

마 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마 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마 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 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는 씨가 뿌려진 곳의 4가지 종류에 대한 비유를 풀어주시는데, 이 4가지 종류의 ‘밭’은 말씀을 수용하는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결론에 해당되는 ‘좋은 땅’의 경우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성경은 말한다. 즉 우리들에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되라는 멧세지이며, 이것은 ‘천국의 수용적 조건’으로서의 ‘말씀’을 의미한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해석으로 볼 때에, ‘씨’는 ‘말씀’은 뜻하며, 4가지 종류의 ‘밭’은 ‘마음’을 뜻한다. 이 비유에서는 신천지의 비유풀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이단들도 처음부터 이상한 주장을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나 신천지가 해석하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가지의 천국비유를 모든 ‘씨’가 다 말씀이고 모든 ‘밭’이 다 사람의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가 된다. 그것은 다분히 고의성과 조작 해석의 의도가 있으며, 마태복음 13장의 본문에 해당되는 첫 번째 비유의 구절만을 볼 때에, 본문에서 언급되는 ‘씨’는 ‘말씀’이며 ‘밭’은 ‘마음’이 옳다.


2.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마 13: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마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로서 소위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이다. 이 성경본문 역시 예수님이 마 13:36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비유를 해석하여 주므로 일부러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 다른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본문에서 ‘밭’은 ‘마음’도 아니며 ‘교회’도 아니라, ‘세상’을 뜻한다고 예수님이 직접 해석하여 주셨다는 것은 중요하다. 신천지는 계속 ‘밭’이 ‘마음 혹은 교회’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해석은 예수님이 직접 풀어주신 해석과 다르며 ‘밭’은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

성경에서 ‘씨’라는 단어는 문자적일 수도 있고 비유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씨에 대한 경우를 생각나는대로 정리하여 보자면, 식물의 씨앗(창 1:11-12), 말씀(마 13:23), 생명(고전 15:36), 후손(요 7:42), 성령(요일 3:9), 하나님의 아들(마 13:38), 아주 작은 것(마 13:32)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비유를 어느 한가지 단어의 뜻만으로 비유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주장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또 ‘제 밭에 뿌린 사람’의 구절에서 ‘제 밭’이라는 표현은 이 세상의 소유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이 ‘밭’은 ‘마음이나 교회’라고 해석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예수님의 소유가 아니라 온 세상이 예수님의 소유이며, 또한 본문에서 ‘씨’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을 받을 성도, 즉 ‘천국의 아들들’을 말하며, 씨는 추수 때까지 자라나서 비로소 곡식을 맺게 되는데, 그 씨는 처음부터 교회 안에서만 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13장에 대한 본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풀어주셨다.

마 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마 13: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마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 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마 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마 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 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본문에서 씨는 말씀이 아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이라고 예수님이 직접 풀이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밭은 세상이라고 예수님이 설명하여 주셨으며, 좋은 씨와 가라지의 씨 모두 교회 안에서만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뿌려지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은 교회를 위해서만 보내주신 것이 아니며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가라지에 대해서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라고 성경은 말한다. 본문에서 ‘잘 때’라고 하는 시간은 ‘아무도 모르게’라는 의미일 것이다. 원수는 사탄을 뜻하는 것이 당연하며, 곡식이 뿌려져 있는 밭에 가라지의 씨를 덧뿌리고 간 것이다. ‘덧 뿌리고 갔다’는 것은 이미 뿌린 씨 위에 한 번 더 씨를 뿌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두 개의 씨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고, 가라지의 씨는 원수에 의하여 몰래 덧뿌려진 것이다.

신천지는 구약의 예레미야 31장27절을 인용하면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의 두 종류의 씨가 뿌려졌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인용하면서 마태복음 13장의 좋은 씨와 가라지도 두 종류의 씨라고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물론 신천지 자신들이 ‘사람의 씨’(하나님의 씨)고 기독교는 ‘짐승의 씨’라고 이원론적인 해석을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엉터리 해석으로서 구약 예레미야의 본문은 두 종류의 씨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성경을 본문의 뜻과 전혀 다르게 짜맞추는 엉터리 해석을 상습적으로 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27-28)

첫째, 마 13장에서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자의 아들들’이라고 언급되었는데, 예레미야 본문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라고 언급함으로 전혀 다르다.

둘째, 예레미야 본문은 마태복음 본문과 같이 예수님이 뿌린 씨와 원수가 뿌린 씨의 두 종류가 아니라, 둘 다 하나님이 뿌린 씨라고 말하므로 다르다.

셋째, 본문의 뜻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의 두 종류가 서로 다른 씨로 구별되어 이원론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과 짐승을 둘 다 번성시켜준다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에 대한 약속이다. 그 씨는 ‘후손, 자손’을 뜻하며, 본문은 이스라엘과 유다 가문에서 사람(자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짐승(육축)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모두 동일한 회복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는 의미이다.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동번역] 앞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을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 이전에는 자나깨나 이 백성을 뽑고 부수고 허물고 멸하고 해치기만 하였으나, 그만큼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우며 심어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현대인의성경]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 땅에 사람과 짐승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내가 그들을 철저하게 뽑고 파괴하며 허물고 엎어 버리며 멸망시키고 재앙으로 쳤던 것처럼 앞으로는 철저하게 그들을 세우고 심을 것이다.

본문에서 ‘씨를 뿌리다’는 동사의 뜻은 ‘번성하게 하다, 퍼뜨리다’는 뜻이며, 신천지와 같이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구별되어 존재한다는 이원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본문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엉터리 해석이다. 이스라엘은 원래 농경업을 하는 유목민이었다. 그들에게 축복은 사람의 자손과 함께 육축도 번성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러한 표현이 상당히 많다.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슥 2:4)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으로 많게 하되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6:11)

예레미야 본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와 전혀 다른 내용이다. 또한 마태복음 13장의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멧세지는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다는 것이며, 즉 하나님나라(천국)의 ‘선택과 유기’를 뜻한다.

(1) 하나님은 세상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의인과 불의한 자에 대해서 공존하도록 허용하신다.
(2) 하나님은 종말적으로 의인을 구원하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포기하신 땅이 아니라 악과 불의가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가꾸어지는 좋은 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가라지는 독보리의 일종으로서 싹의 모습이 밀이나 보리와 비슷하여 실제로 이삭이 열리기 전까지는 구별하기 어렵다고 한다. 성경은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가라지를 미리 뽑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곡이 함께 뽑힐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 의미는 첫째, 늦게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들까지 잘못 뽑히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둘째,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의 주권적인 권한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으며 셋째, 심판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것은 심판은 예수님의 주권이라는 뜻이며, 현세에서 직접적인 심판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유기’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악인을 유기하거나 방치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Justice)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그대로 유기하신다.

제자들은 예수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제안한 것이며, 예수님은 제자들이 직접 뽑겠다는 것을 그대로 두라고 한 것이다. 성경은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라고 말한다.

신천지는 일반 교회에 그들의 교인들을 파송하여 교인들을 미혹하여 빼가는 반윤리적이며 반도덕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데, 이들을 ‘추수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본문에서 ‘추수꾼’은 마지막날 심판을 하는 ‘천사’를 뜻한다. 또 밭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신천지의 추수꾼들이야말로 마지막날 심판을 받을 악한 자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3. 예수님의 비유 -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1-33)

1) 겨자씨의 비유 :

본문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에 대한 세 번째 비유 역시 씨에 대한 비유이다. 본문에서 ‘씨’는 신천지와 같이 ‘말씀’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는 의미로 비유되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어떤 종류의 겨자는 3m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즉 겨자씨의 비유는 씨가 무엇을 비유하였느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씨보다 아주 작은 씨라는 것이며, 그것이 매우 크게 성장한다는 하나님나라(천국)의 확장성의 개념으로 비유된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관용구적인 속담에서 “겨자씨보다 작다”는 의미는 아주 작은 것을 상징하였다고 한다.

특히 신천지는 성경본문이 주는 멧세지에는 관심이 없고, ‘씨’가 무엇을 뜻하고, ‘나무’가 무엇을 비유하고, ‘새’가 무엇을 비유하며, ‘가지’가 무엇을 비유하느냐는 단어풀이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적은 씨는 ‘말씀’으로, 나무를 ‘사람’으로 비유풀이를 하고, 새를 ‘영’으로, 가지를 ‘전도자’로 비유하며, 앞 구절 비유의 씨가 두 종류가 있다는 경우와 같이, 나무에도 두 종류의 나무가 있다는 결론으로 유도하는데, 기독교의 목자로 비유되는 나무는 사탄의 영이 모이는 곳이고, 이만희로 비유되는 나무는 선한 영이 모이는 진리의 나무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만들고 있다. 결국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나무)에게 영(새)이 모여든다”라는 황당한 결과로 짜 맞추려는 해석을 만드는 것이다. 신천지가 나무를 사람으로, 새를 영으로 비유풀이를 유도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6)

마태복음의 이 본문에서 과연 ‘새’가 ‘영’이라는 뜻일까? 본문은 '새=영'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는 형태를 표현한 것이다. 또 신천지는 아래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나무가 손바닥을 친다고 하였으므로 나무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웃을 수 없는 비유풀이이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사 55:12)

그렇다면 산도 노래를 하니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신천지는 산이 교회라고 비유풀이를 한다. 즉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비유풀이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천지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라고 하였으니 사람이 나무라고 비유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감람나무하고 비유한 것은 ‘사람=나무’라는 등식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며,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로 비유한 이유는 그 나무의 속성 중에서 포도열매와 감람유라는 결실을 얻기 위한 결과적인 개념으로 비유하기 위함이다. 마치 예수님이 이방인을 개로 비유하였으니 사람은 모두 개로 비유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구약성경에는 크게 자란 나무와 그 나무의 가지에 새가 깃든다는 구절이 많이 있다. 구약성경 구절은(단 4:11) 일차적으로 큰 제국과 그 제국에 모여드는 많은 나라들과 민족들을 상징하지만, 종말적으로 천국에 비유되었을 때에는 당연히 메시야 왕국과 그 왕국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특히 에스겔 17장의 본문은 메시야왕국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지라” (겔 17:23)

‘깃들이느니라’라는 단어는 ‘카타스케노오’로서 ‘장막’을 가리키는 단어 ‘스케노마’에서 유래되었다. ‘카타’라는 단어는 ‘아래, 밑’을 뜻하며, ‘스케노오’는 ‘살다, 거주하다’로서 “그 아래에서 산다”는 두 단어의 합성어가 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크고 온전한 장막”(히 9:11)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 누룩의 비유 :

본문에서 ‘여자’가 누구를 의미하며 ‘누룩’이 무엇을 뜻하느냐는 선문선답식의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 신천지는 ‘여자’를 ‘목자’라고 비유풀이 하는데 이런 식의 비유풀이는 완전히 자의적이며 임의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왜 여자를 목자로 비유하는가? 만약 성경에서 ‘여자’라는 단어를 모두 목자로 비유시켜 해석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다. 또한 신천지에서는 ‘누룩’을 ‘심령을 변화시키는 교훈과 말씀’이라고 비유하는데,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라고 말했을 때에,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교훈과 말씀이 없는 자’라는 뜻으로 해석되는가? 신천지의 비유풀이 목적은 이만희 교주가 가루 서말에 말씀을 넣었다는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조작적인 해석으로서, 사이비집단에서 교주를 신격화시키는 전형적인 방법일 뿐이다.

성경에서 누룩은 ‘팽창한다, 확장시킨다’는 개념으로서, 좋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나쁜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것은 “옳지 않은 사상이 오염되고 확장하는 것”을 뜻하며, 누가 보아도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마태복음 본문에서 누룩은 단지 반죽을 크게 팽창시킨다는 이스트의 개념으로서, 앞에서 기록한 아주 작은 겨자씨에서 큰 나무로 성장한다는 비유와 동일한 의미로 보는 ‘확장적인 천국관’이 옳은 해석이 된다.

신천지에서는 ‘가루 서말’이 ‘세 사람’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만, ‘가루 서말’ 역시 큰 의미는 갖지 않는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로 비유한 것에 반하여, 가루 서말은 약 22-23리터 정도가 되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하루에 필요한 빵을 만들 수 있는 분량으로서, 한 가족 단위의 하루 세끼 분량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라고 말하므로서,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사례를 예로 든 것이다.

신천지에서는 이 ‘가루 서말’을 ‘세 사람’으로 해석하며, 계 6:6의 ‘보리 석되’와 관련시켜서 해석한다. 실제로 고등교육 과정에서는 계 6:6의 ‘밀 한되’는 이만희 교주라고 해석하고, ‘보리 석되’는 신천지의 초기 지파장 세 사람을 뜻한다고 해석하였는데, 이 지파장 중에서 윤모씨라고 하는 지파장 한명이 죽자, ‘보리 석되‘는 ’소수의 사람‘ 혹은 ’씨뿌리는 자들‘로 바꾸었다. 이런 해석은 결론적으로 이만희와 초기 신천지 지파장을 성경적인 인물로 신격화 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무도 공감할 수도 없는 비유풀이일 뿐이다. 이만희에게 미혹된 신천지 교인들이 정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생각하여 보라, 가루 서말을 세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성경은 겨자씨와 가루 서말의 누룩의 두 가지로 비유하였을까? 마태복음에서 전자의 겨자씨의 경우에 씨를 뿌린 사람은 대표단수인 ‘a man’이 되고, 반죽에 누룩을 넣은 여자는 대표단수인 ‘a woman’으로 기록하였다. 이것은 농사를 짓는 일은 남자의 역할이고, 요리를 하는 일은 여자라는 관점으로 일상적인 삶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두 가지 비유의 평행구조를 만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비유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된다는 관점이 가장 중요한 멧세지가 되며, 이 비유는 남자와 여자가 하고 있는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사건을 통하여 가능한 많은 청중에게 이해를 시키며 호소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카슨이라고 하는 학자는 이 두 가지 비유에 대해서 전자의 나무 비유는 외향적으로 성장하는 비유를 말하고, 후자의 반죽 비유는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비유를 묘사한다고 하였는데, 그 견해가 매우 동감을 준다.


4. 그릇에 대한 비유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사 64:8)

그릇에 대한 비유도 신천지는 이상한 의도와 고의적인 목적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신천지를 ‘하나님의 그릇’이라고 해석하여 ‘진리를 담고 전하는 사람’으로 보며, 기독교를 ‘사단의 그릇’으로 해석하여 ‘비진리를 담고 전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사야 64:8, 롬 9:20-21에서 언급하는 멧세지는 그릇이 무엇을 담느냐는 내용도 아니고, 두 가지의 그릇으로 구별하자는 것도 아니며,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관계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뜻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역사하시는 주권적인 통치와 권세를 상징한다. 귀하게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은 하나님과 사탄의 그릇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고 사용하시는 것을 뜻한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0-21)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렘 18:3-6)

신천지는 모든 비유풀이의 목적이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이 뜻하는대로 해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즉 계시록의 내용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구도, 영과 육의 구도, 진리와 비진리의 구도, 선과 악의 구도로 만들어서, 신천지를 전자로 조작하고, 기독교를 후자로 조작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며, 신천지와 관계되는 인물들을 성경의 인물로 조작하기 위한 초기 예비단계가 바로 비유풀이 성경공부이다. 결과적으로 그 하나님의 보좌에 이만희 교주를 앉히기 위함인 목적이며, 그러한 비유풀이에 의한 계시록의 해석을 ‘실상계시’라고 부른다. 계시록을 쓴 사도요한은 ‘환상계시’만 받고 기록하였으며, 이만희교주에 의하여 실상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육은 영을 담기위한 그릇이라고 가르친다. 그 결론적인 주장은 이만희라는 육체에 재림예수의 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신천지 열두지파장에게는 하늘의 열두사도의 영이 들어오고, 신천지교인이 144,000명이 되면 계시록에 있는 144000명의 영이 들어와서 지상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천지가 주장하는 부활의 개념인데, 이러한 교리를 만들기 위하여 그릇에 대한 비유풀이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토기장이와 질그릇에 대한 성경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강조하는 내용으로서, 신천지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본래의 의미를 왜곡시키거나 변질시키는 단어 비유플이에 지나지 않는다.

신천지에 미혹된 교인들은 신천지의 비유풀이가 어떻게 이렇게 앞뒤로 딱 들어 맞추어지는가? 하고 흥미를 갖고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이 결과를 얻기 위하여 신천지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하는데, 현관에 신천지 출입금지 표어를 입구에 붙이기도 하고, 누가 혹시 “이곳이 신천지 아닙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신천지는 이단이지요. 이곳은 신천지가 아니라 성경대로 가르치는 곳입니다”라고 답변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장애인을 위하여 강의를 요약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여 강의를 듣고 그 요점을 요약하게 하는 일까지 하고 있으며, 영어공부나 토익공부 카페를 만들어 성경을 영어로 가르치는 행위도 발견된다. 심지어는 교단과 교파가 많은 장로교라는 명칭으로 위장교회를 운영하는데 전국적으로 백 여곳이 넘는다.

이러한 비유풀이식의 성경해석은 신천지, 정명석집단, 하나님의 교회등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평상시에 성경공부와 정통신학 공부를 가르쳐야만 하며, 이단에 대한 세미나나 예방대책을 성도들에게 사전에 주지시켜야만 한다.